장재형 목사

마태복음 강해 아카이브

Matthew Commentary Archive · 2023–2026

마태복음 6:9–13 · 산상수훈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 주기도문. 기도의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앞에 서는 삶의 질서를 배우는 강해입니다.

주제 · 주기도문(The Lord's Prayer)

이 강해의 핵심 메시지

주기도문은 기도의 기술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녀가 아버지 앞에 서는 삶의 질서이다. 기도는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먼저 구하는 것으로 시작해, 오늘의 양식과 용서와 보호하심을 받는 것으로 하루를 세운다.

Section 01 · 본문 배경

보여주기 기도의 시대에 주신 기도

주기도문은 산상수훈 한가운데, 마태복음 6장의 심장부에 놓여 있다. 예수님은 기도를 가르치시기에 앞서 먼저 두 부류의 잘못된 기도를 지적하신다. 하나는 회당과 길 모퉁이에서 사람에게 보이려고 서서 기도하는 외식하는 자들의 기도이고, 다른 하나는 말을 많이 해야 들어주실 것이라 생각하는 이방인의 중언부언이다(마 6:5–8).

두 오류의 뿌리는 같다. 기도의 대상을 잘못 설정한 것이다. 보이려는 기도는 사람을 청중으로 삼았고, 중언부언은 하나님을 정보가 부족한 분처럼 대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있어야 할 것을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 아시느니라”(마 6:8). 기도는 하나님을 설득하는 기술이 아니다. 이미 알고 계시는 아버지 앞에 자녀가 서는 자리다. 이 전제 위에서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당시 유대인들에게 기도는 낯선 것이 아니었다. 하루 세 번의 정해진 기도, 십팔기도문(쉐모네 에스레) 같은 전통이 있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의 기도 앞에서 자신들의 기도가 빈손임을 느꼈다. 누가는 제자들의 요청을 기록한다. “주여 요한이 자기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친 것과 같이 우리에게도 가르쳐 주옵소서”(눅 11:1). 주기도문은 그 간청에 대한 응답이다. 종교적 형식을 한 겹 더 얹은 것이 아니라, 기도의 중심과 순서를 새로 세워 주신 것이다.

Section 02 · 원어 · 문맥 분석

아바에서 시작해 아멘에 이르는 길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 아바(Abba)

기도의 첫 마디가 운명을 결정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라 하신다. 예수님이 친히 쓰신 아람어 호칭은 ‘아바(Abba)’다. 집안에서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던 가장 친밀한 소리다. 당시 경건한 유대인이라면 감히 입에 올리지 못하던 호칭을, 예수님은 기도의 문으로 여신 것이다. 여기에 ‘하늘에 계신’이 더해진다. 친밀하되 가볍지 않다. 가깝게 불리시되 여전히 하늘의 보좌에 계신 분이다. 기도는 이 두 기둥 — 초월과 친밀 — 사이에 세워진다.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 하기아스데토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하기아스데토, hagiasthētō)’는 수동태 명령문이다. 우리가 하나님을 거룩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이미 거룩하신 이름이 온 땅에서 거룩하게 여김을 받기를 구하는 기도다. 첫 간구가 나의 필요가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사실이 주기도문의 질서를 보여 준다. 기도는 내 목록을 하나님께 상달하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이름이 이 땅에서 무겁게 여겨지기를 구하는 일에서 시작한다.

“일용할 양식” — 에피우시오스

‘일용할(에피우시오스, epiousios)’은 신약에서 주기도문에만 나오는 희귀한 단어다. ‘오늘에 필요한’, 혹은 ‘존속에 필요한’이라는 뜻으로, 광야에서 매일 만나를 거두던 이스라엘의 기억을 담고 있다. 하나님은 창고를 채워 주신 뒤 찾아오라 하시는 분이 아니라, 매일의 손으로 그날의 분깃을 주시는 분이다. 이 단어 속에 기도의 리듬이 있다 — 하루 단위의 신뢰.

문맥적으로도 주기도문은 6장의 흐름과 정확히 맞물린다. ‘네 아버지께서 아신다’(6:8)는 선언은 장 끝에서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6:32)는 위로로 되풀이된다. 주기도문은 염려를 다루는 본문 안에 놓인 기도다.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는 명령(6:33)은 주기도문의 앞 세 간구를 한 줄로 요약한 것이다.

Section 03 · 핵심 메시지

여섯 간구, 두 개의 방향

주기도문은 여섯 개의 간구로 이루어져 있고, 그 구조가 정확히 둘로 나뉜다. 앞의 세 간구는 ‘당신의(Thy)’ 간구다 — 당신의 이름, 당신의 나라, 당신의 뜻. 뒤의 세 간구는 ‘우리의(Our)’ 간구다 — 우리의 양식, 우리의 죄, 우리의 시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고백으로 시작해 사람의 필요로 내려온다. 이 순서가 뒤집히면 기도는 기도가 아니라 요구서가 된다.

하나님을 향한 세 간구 — 이름, 나라, 뜻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것은 종말론적 기도다. 하나님의 나라는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이미 시작되었으나 아직 완성되지 않았다. ‘이미’와 ‘아직’ 사이에 사는 하나님의 백성은, 하늘에서처럼 하나님의 뜻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구한다. 이 기도는 관념이 아니다. 구원받은 자들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이루어 가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이 산상수훈 전체의 전제이며, 이 간구는 바로 그 사명의 기도다. 내 가정과 일터와 교회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땅’이 되기를 구하는 것이다.

우리를 위한 세 간구 — 양식, 용서, 보호

첫째,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구한 자는 자기 양식도 구할 수 있다. 순서가 먼저일 뿐, 양식의 기도가 천박한 것이 아니다. 몸의 필요를 아버지께 아뢰는 것은 자녀의 정직함이다. 다만 ‘우리에게’라고 기도한다. 내 식탁만 채우는 기도가 아니라,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눌 이웃을 떠올리는 기도다.

둘째,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인간의 영혼이 가장 무거운 이유는 죄의 짐 때문이다. 주님은 그 짐을 십자가에서 대신 지셨고, 그래서 우리는 용서를 구할 수 있다. 그런데 이 간구에는 거울이 달려 있다. ‘~한 것 같이’. 용서받은 자는 용서하는 자가 된다는 것이 은혜의 법칙이다. 받은 은혜를 흘려보내지 않는 사람은 은혜를 알지 못한 사람이다. 십자가에서 쏟아진 용서가 내 관계 속에서 멈춰 서 있다면, 그것은 주기도문의 중단이다.

셋째,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이것은 겸손의 기도다. ‘나는 결코 넘어지지 않는다’고 자신하던 베드로가 그 밤에 주를 부인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자만이 ‘홀로 내버려 두지 마시옵소서’라고 기도한다. 하나님은 악으로 시험하지 않으시지만(약 1:13), 시험의 자리에서 피할 길을 여시는 분이다(고전 10:13). 기도는 시험 앞에서 자기 힘을 과시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의 손을 붙잡는 것이다.

Section 04 · 삶의 적용

주기도문으로 하루를 세우는 법

첫째, 기도의 순서를 점검하라. 나의 기도가 ‘우리의’ 간구로 시작하고 끝나고 있다면, 주기도문의 질서를 다시 배워야 한다. 오늘 아침 기도의 첫 문장을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옵소서’로 시작해 보라. 첫 문장이 바뀌면 기도 전체의 무게중심이 바뀐다.

둘째, 하루 단위의 신뢰를 연습하라.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기도는 내일의 염려를 오늘 아버지께 맡기는 훈련이다. 염려는 내일의 짐을 오늘 미리 지는 것이고, 기도는 오늘의 분깃을 오늘 받는 것이다. 매일 저녁, 오늘 주신 양식 — 물질만이 아니라 말씀과 평안과 관계의 분깃 — 을 헤아려 감사하라.

셋째, 용서의 계좌를 정산하라. 주기도문을 암송하면서도 마음에 품은 미움이 있다면, 기도와 삶 사이에 단절이 있는 것이다. 내가 사하여 준 것 같이 사함을 받는다는 간구를 기억하라. 용서는 감정이 회복된 뒤에 하는 것이 아니라, 십자가의 은혜를 기억하며 결단하는 것이다. 오늘 내가 빚을 탕감해 주어야 할 사람 한 명을 주님 앞에 떠올려 보라.

넷째, 겸손한 자기 인식으로 시험을 경계하라. ‘나는 괜찮다’는 자신감이 가장 위험한 시험의 문이다. 매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소서’라고 기도하는 사람은 유혹의 자리를 미리 피하는 지혜를 얻는다. 기도는 쓰러진 뒤의 응급처치만이 아니라, 넘어지기 전의 예방이다.

다섯째, ‘우리’의 자리를 넓혀라. 주기도문에는 ‘나’가 한 번도 나오지 않는다. ‘우리 아버지’, ‘우리에게’, ‘우리를’. 이 기도는 공동체의 기도다. 혼자 드리더라도 교회 전체를 품고 드리는 기도이며, 양식과 용서와 보호를 이웃과 함께 구하는 기도다. 기도의 언어가 ‘우리’로 바뀌면 공동체를 보는 눈이 바뀐다.

Section 05 · 나눔 및 기도 제목

함께 나누고 함께 기도하기

  • 나눔 1. 나의 기도는 ‘당신의’ 간구와 ‘우리의’ 간구 중 어느 쪽에 무게가 실려 있습니까? 주기도문의 순서가 내 기도생활에 던지는 도전은 무엇입니까?
  • 나눔 2. ‘일용할 양식’의 기도가 염려의 습관을 어떻게 바꾸어 놓을 수 있을까요? 최근에 아버지께서 ‘오늘의 분깃’으로 채워 주신 경험을 나누어 봅시다.
  • 나눔 3. ‘내가 사하여 준 것 같이’라는 말씀 앞에 떠오르는 사람이 있습니까? 용서가 결단임을 기억할 때, 이번 주에 내가 취할 첫걸음은 무엇입니까?

함께 드리는 기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아버지의 이름이 우리 가정과 교회와 이 땅에서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기를 원합니다. 하늘에서처럼 땅에서도 아버지의 뜻이 이루어지게 하시고,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주시며, 우리가 받은 용서를 이웃에게 흘려보내게 하시고, 시험의 자리에서 우리를 건져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FAQ

자주 묻는 질문

주기도문은 매번 그대로 암송해야 하는 기도문인가요?+

주기도문은 반복 암송용 주문이 아니라,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 주신 '기도의 뼈대'입니다. 예수님은 '이 말을 그대로 되뇌라'가 아니라 '이렇게 기도하라'고 하셨고, 직전에 이방인의 중언부언을 경계하셨습니다(마 6:7). 주기도문의 여섯 간구를 순서와 우선순위의 틀로 삼아 각자의 언어로 기도를 채워 가는 것이 본래의 용법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라는 호칭은 왜 특별한가요?+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거룩한 이름을 함부로 입에 올리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아람어 '아바(Abba)', 곧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부르는 친밀한 호칭으로 기도를 시작하라 하셨습니다. '하늘에 계신'은 아버지의 초월성과 권위를, '우리 아버지'는 십자가로 열린 친밀한 관계를 함께 담은 호칭입니다. 기도는 존경과 친밀함이 만나는 자리입니다.

'일용할 양식'은 하루치 양식만 구하라는 뜻인가요?+

'일용할(에피우시오스, epiousios)'은 '오늘에 필요한', '존속에 필요한'이라는 뜻입니다. 내일과 모레의 모든 것을 미리 축적한 뒤에 하나님을 찾는 삶이 아니라, 매일 아버지의 손에서 그날의 필요를 받는 신뢰의 삶을 가르칩니다. 동시에 '우리에게' 주옵소서라는 표현처럼, 배고픈 이웃과 양식을 나누는 공동체적 책임까지 포함하는 기도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시나요?+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는 하나님이 악으로 시험하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야고보서 1:13은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이 간구는 '시험당할 만한 자리에 홀로 내버려 두지 마시고, 악에서 건져 주옵소서'라는 겸손한 자기 인식의 기도입니다. 자신의 연약함을 아는 자만이 이렇게 기도할 수 있습니다.

용서의 기도에서 내가 남을 용서하는 것이 구원의 조건인가요?+

행위로 얻는 구원의 조건이 아니라, 받은 은혜의 증거이자 흐름입니다. 예수님은 주기도문 직후 '너희가 사람의 잘못을 용서하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 잘못을 용서하시려니와'(마 6:14)라고 덧붙이셨습니다. 십자가에서 죄 사함을 받은 사람이 그 은혜를 흘려보내지 않고 남의 빚을 움켜쥐는 것은 모순입니다. 용서는 은혜를 받은 자의 삶의 모양입니다.

본문 · 마태복음 6:9–13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가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 죄를 사하여 주시옵고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

주요 참고 성구: 마 5:44 / 마 6:5–8, 14–15, 25–34 / 마 7:7–11 / 눅 11:1–13 / 약 1:13 / 고전 10:13 / 갈 4:6 / 롬 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