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 · 마태복음 강해 아카이브 · 주제 강해

나를 따라오라
—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태복음 4:18–22을 중심으로, 갈릴리 해변의 부르심이 제자도와 선교론 전체를 어떻게 담고 있는지 탐구합니다.

📖 마태복음 4:18–22 / 마태복음 28:18–20 ✍ 장재형 목사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가 바다에 그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

마태복음 4:18–19

"그들이 곧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

마태복음 4:20

I. 갈릴리 해변의 아침 — 부르심의 배경

마태복음 4장은 예수님의 공생애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장이다. 광야의 시험을 마치신 예수님은(마 4:1–11) 갈릴리로 돌아오셔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고 선포하신다(마 4:17). 그 직후 해변을 걸으시며 네 명의 어부를 부르신다.

이 장면이 일어난 갈릴리 호수는 해수면보다 약 210m 낮은 내륙 호수다. 주변 지형이 비옥하고 어업이 번성해, 1세기 갈릴리는 로마 제국의 중요한 어업 기지였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은 그 어업 경제 안에서 생계를 꾸리던 평범한 어부들이었다. 예수님은 철학자를 찾아가지 않으셨다. 회당 지도자를 찾아가지 않으셨다. 그물을 던지는 어부들을 찾아가셨다. 이것이 "나를 따라오라"는 부르심이 갖는 첫 번째 충격이다.

마태복음 4장의 위치 — 공생애의 출발점

마태복음 구조에서 4장은 결정적 전환점이다. 1–2장이 예수님의 탄생과 유아기, 3장이 세례와 성령 임재, 4장이 시험과 공생애 시작이라면, 4:18–22는 그 공생애의 첫 번째 공식 행동이다. 예수님이 공생애를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하신 일이 제자를 부르신 것이다. 혼자 하지 않으셨다. 함께 할 사람을 먼저 세우셨다. 이것이 선교의 방법론이고 제자도의 출발점이다.

II. "나를 따라오라" — 부르심의 네 가지 차원

헬라어 원문 "δεῦτε ὀπίσω μου(데우테 오피소 무)"는 직역하면 "이리로 오라, 나의 뒤를." 단순한 초대가 아니라 방향과 인격을 동시에 명시하는 명령이다. 이 짧은 문장에 제자도의 핵심이 모두 담겨 있다.

첫째 차원
인격적 관계
"나를" — εμέ

율법을 따르라도, 교훈을 따르라도 아니다. "나"라는 인격을 따르라는 요청이다. 예수님은 진리를 가르치신 분이 아니라 진리이신 분(요 14:6)이기 때문이다.

둘째 차원
방향성
"따라오라" — ὀπίσω

뒤에서 앞서 가는 분을 따르는 것이다. 내가 길을 정하는 것이 아니라, 앞서 가시는 분의 발자취를 밟는 것이다. 누가복음 9:62처럼 뒤를 돌아보지 않는 삶이다.

셋째 차원
변화의 약속
"되게 하리라" — ποιήσω

부르심은 현재 상태로의 승인이 아니라 변화의 약속이다. 어부를 어부로 쓰시되, 낚는 대상이 달라진다. 기존의 삶의 방식이 새로운 사명의 도구가 된다.

당시 유대 랍비 문화에서 제자는 스스로 스승을 찾아갔다. 그러나 예수님은 정반대로 하셨다. 먼저 찾아가 부르셨다. 요한복음 15:16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 부르심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예수님께 있다. 이것이 은혜다. 자격으로 오는 것이 아니라 부름 받아서 오는 것이다.

III. 그물을 버리다 — 즉각적 응답의 신학

예수님이 부르셨을 때 베드로와 안드레의 반응이 기록된다. "그들이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20). 야고보와 요한도 마찬가지였다. "그들이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마 4:22).

"곧"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우테오스(εὐθέως)'는 마태복음 전체에서 즉각적이고 지체 없는 행동을 묘사할 때 반복적으로 쓰이는 단어다. 이 즉각성이 달란트 비유에서 "바로 가서 장사하여"(마 25:16)와 같은 원리다. 충성의 표지는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응답의 속도에 있다.

그물이 의미하는 것

그물은 어부에게 단순한 도구가 아니었다. 그물은 생계였고, 정체성이었으며, 미래였다. 당시 갈릴리 어부들의 그물은 값비싼 자산으로, 오늘날로 치면 자영업자의 사업 장비 전체에 해당한다. 베드로와 안드레는 그것을 "버려 두었다." 헬라어 '아피에미(ἀφίημι)'는 '완전히 놓아 버리다, 포기하다'는 뜻이다. 팔거나 맡긴 것이 아니라 그 자리에 두고 떠난 것이다.

야고보와 요한은 더 나아갔다. 그물뿐 아니라 "배와 아버지를 버려 두고" 따랐다(마 4:22). 아버지 세베대는 배 위에서 그물을 손질하고 있었다. 가업을 버린 것이다. 혈연보다 부르심이 앞선 결단이었다. 이것이 누가복음 9장 제자도의 둘째 원리 — 혈연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더 중요하게 여기라 — 의 살아 있는 예화다.

제자버린 것제자도의 원리 (눅 9장)
베드로 · 안드레그물 — 생계와 직업 정체성소유를 극복하라
야고보 · 요한배와 아버지 — 가업과 혈연혈연보다 부르심을 우선하라
네 사람 모두뒤를 돌아보지 않음즉각 응답하고 앞만 보라

IV. 사람을 낚는 어부 — 두 가지 낚시의 차이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이 말씀은 단순한 은유가 아니다. 어부의 기술과 경험 전체를 새로운 사명에 쏟으라는 명령이다. 그러나 물고기를 낚는 것과 사람을 낚는 것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다.

구분물고기를 낚는 어부사람을 낚는 어부
목적물에서 꺼내어 죽임죽음에서 꺼내어 살림
대상물고기 — 의지 없음사람 — 자유의지를 가진 존재
방법그물 · 낚시 · 함정말씀 · 삶 · 사랑의 증거
결과죽음생명
성경적 배경렘 16:16 / 겔 47:9–10

구약에서 '낚다'는 표현은 심판의 언어로도 쓰인다. 예레미야 16:16 "내가 많은 어부를 불러다가 그들을 낚게 하며." 그러나 예수님의 용법은 다르다. 에스겔 47:9–10에서 생명수가 흐르는 강가에 어부들이 서서 그물을 치는 장면은 회복과 생명의 이미지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심판의 도구가 아니라 구원의 도구다. 죄와 죽음의 바다에 빠진 사람을 건져 생명 안으로 데려오는 것이 사람을 낚는 일이다.

씨 뿌리는 비유와의 연결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와 물고기와 그물의 비유(마 13:47–50)는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역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를 보여 준다. 씨 뿌리는 자는 말씀을 전파하는 사람을 낚는 어부다(롬 10:14). 그물은 온 세상에 던져지고, 좋은 것과 못된 것이 함께 들어온다. 심판은 하나님의 것이다. 어부의 역할은 그물을 던지는 것이다.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누가 들을 수 있는가"(롬 10:14).

V. 제자도의 세 원리 — 누가복음 9:57–62

"나를 따라오라"는 부르심에 응한 삶이 어떤 것인지, 누가복음 9:57–62는 세 장면으로 구체화한다. 각 장면은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자에게 주어진 실제 요구를 보여 준다.

첫째 — 소유를 극복하라

"여우도 굴이 있고 공중의 새도 집이 있으되 인자는 머리 둘 곳이 없도다"(눅 9:58). 예수님을 따르겠다는 사람에게 주님은 안락함의 보장을 약속하지 않으셨다. 그물을 버린 베드로와 안드레처럼, 삶의 안전망을 내려놓는 것이 제자도의 시작이다. 달란트 비유의 "바로 가서 장사하라"는 명령도 안전한 자리에 머물지 말라는 요청과 같다.

둘째 — 혈연보다 부르심을 우선하라

"먼저 가서 내 아버지를 장사하게 허락하옵소서"(눅 9:59). 주님의 대답은 단호했다. "죽은 자들이 자기의 죽은 자들을 장사하게 하고 너는 가서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라"(눅 9:60). 야고보와 요한이 아버지 세베대를 배에 남겨 두고 따른 것과 같은 원리다. 혈연의 유대가 강할수록 이 요구는 더 날카롭게 다가온다. 그러나 부르심은 어떤 유대보다 우선한다.

셋째 — 뒤를 돌아보지 말라

"밭에 손을 대고 뒤를 돌아보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합당하지 아니하니라"(눅 9:62). 쟁기질하는 사람이 뒤를 돌아보면 고랑이 굽어진다. 제자의 삶은 앞만 보는 삶이다. "그물을 버려 두고 예수를 따르니라"의 '버려 두고'가 이 원리다. 과거의 삶, 과거의 정체성, 과거의 안전망을 뒤돌아보지 않는 것이 제자도다.

VI. 갈릴리에서 세상 끝까지 — 지상대명령과의 연결

마태복음 4:19의 "나를 따라오라"는 마태복음 28:19의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로 완성된다. 두 본문의 구조가 정확히 대응한다.

마태복음 4:19마태복음 28:19–20
"나를 따라오라""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예수님이 제자를 부르심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낳으라는 명령
갈릴리 해변 — 이스라엘 안온 천하 — 모든 민족
어부 네 명온 세상의 제자들
"되게 하리라" — 변화의 약속"내가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으리라" — 동행의 약속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18–20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마 28:18). 이 권세는 제자를 낳는 권세, 가르치는 권세, 세례를 베푸는 권세다. 세상의 어떤 통치자도 이 권세를 행사할 수 없다. 갈릴리 해변에서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는 약속이 부활 이후 전권을 받으신 주님의 명령으로 완성된 것이다. 케리그마(선포) → 코이노니아(교제) → 디아코니아(섬김)의 교회 구조는 이 지상대명령의 실행 방식이다.

VII. 부르심을 뒷받침하는 교리적 기초

그리스도론 — 부르시는 분의 정체

"나를 따라오라"고 하신 분이 누구인가? 요한복음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한복음 1:14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갈릴리 해변에서 어부들을 부르신 분은 참 하나님이자 참 인간(Vere Deus Vere Homo)이시다. 빌립보서 2:6–8의 케노시스(자기 비움)를 통해 오신 분이 스스로 먼저 어부들을 찾아가 부르셨다. 부르심 자체가 케노시스의 연장이다.

구원론 — 사람을 낚는 이유

왜 사람을 낚아야 하는가? 로마서 1:18 이하는 인간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 싫어하여 온갖 죄에 빠진 상태를 선언한다. 그 결과 하나님은 인간을 "내버려 두셨다"(롬 1:24, 26, 28). 내버려 두심은 파멸로 가는 가장 무서운 심판이다. 그 심판의 바다에서 사람을 건지는 것이 사람을 낚는 어부의 사명이다.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눅 19:10). 사람을 낚는 어부는 이 구원의 사역에 동참하는 자다.

성령론 — 함께하시는 분

지상대명령의 마지막 약속은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다. 이 함께하심이 성령을 통해 이루어진다. 요한복음 16:7 "내가 떠나가지 아니하면 보혜사가 너희에게로 오시지 아니할 것이요." 예수님이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셨을 때 어부들은 혼자 가는 것이 아니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성령과 함께 그물을 던진다. 그물을 당기는 힘은 어부의 힘이 아니라 성령의 힘이다.

VIII. 나를 따라오라 — 오늘의 다섯 가지 실천 원리

  1. 부르심에 즉각 응답하라. 베드로와 안드레가 "곧" 그물을 버렸듯, 주님의 부르심에는 지체가 없어야 한다. 달란트 비유의 "바로 가서 장사하여"(마 25:16)와 같은 즉각성이 제자도의 첫 번째 표지다. 내일로 미루는 것이 그물을 땅에 묻는 것이다.
  2. 무엇을 버려야 할지 점검하라. 그물은 생계였고 아버지는 혈연이었다. 각자에게 "따라오라"는 부르심을 가로막는 것이 다를 수 있다. 안락함일 수도, 관계일 수도, 직업 정체성일 수도 있다. 버려야 할 것을 알아야 따를 수 있다.
  3. 뒤를 돌아보지 말고 앞만 보라. 히브리서 12:2 "믿음의 주요 또 온전하게 하시는 이인 예수를 바라보자." 바라봄의 방향이 제자도를 결정한다. 과거의 그물, 과거의 안전망을 자꾸 되돌아보면 고랑이 굽어진다.
  4. 사람을 낚는 그물을 던져라. 전방 선교(Frontier Mission)는 먼 곳의 이야기가 아니다. 내 옆에 있는 사람에게 말씀을 전하고, 함께 읽고, 함께 기도하는 것이 그물을 던지는 행위다.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누가 들을 수 있는가"(롬 10:14). 나의 입이 열려야 누군가의 귀가 열린다.
  5. 세상 끝까지 함께하시는 분을 신뢰하라. 지상대명령의 권세와 약속이 함께한다(마 28:18, 20). 어부가 그물을 당기듯, 성령이 역사하신다. 우리의 역할은 그물을 던지는 것이고, 물고기를 모으는 것은 하나님의 일이다.

IX. 결론 — 갈릴리의 아침이 오늘 반복된다

갈릴리 해변의 그 아침, 예수님은 그물을 던지는 평범한 어부들에게 걸어가셨다. 그들의 학력을 묻지 않으셨다. 경건의 이력을 묻지 않으셨다. 그냥 말씀하셨다. "나를 따라오라." 그리고 그들은 "곧" 그물을 버렸다.

그 장면이 오늘 반복된다. 주님은 오늘도 우리의 일상 안으로 찾아오신다. 그물을 던지는 자리, 밭을 가는 자리, 책상 앞에 앉은 자리에서 말씀하신다. "나를 따라오라." 그 부르심에 "곧" 응답하는 자가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된다. 갈릴리의 네 어부가 온 세상을 품은 것처럼, 오늘의 응답이 내일의 역사를 만든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마태복음 28:20
주요 참고 성구
마 4:17–22 / 마 9:9 / 마 13:47–50 / 마 16:24–26 / 마 28:18–20
막 1:16–20 / 눅 5:1–11 / 눅 9:57–62 / 눅 19:10
요 1:35–42 / 요 14:6 / 요 15:16 / 요 21:1–14
롬 1:16 / 롬 10:14–15 / 고전 9:19
렘 16:16 / 겔 47:9–10 / 사 6:8
빌 2:6–8 / 히 12:1–2 / 갈 1:17–18 / 행 1:8

자주 묻는 질문 (FAQ)

'나를 따라오라'는 부르심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헬라어 원문 '데우테 오피소 무(δεῦτε ὀπίσω μου)'는 '이리로 와서 나의 뒤를 따르라'는 뜻으로, 율법이나 교훈이 아닌 예수님이라는 인격을 따르라는 초청입니다. 당시 랍비 문화에서 제자가 스승을 찾아가던 것과 달리, 예수님은 먼저 어부들을 찾아가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의 주도권이 전적으로 예수님께 있다는 것이 이 구절의 핵심으로, 요한복음 15:16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나니'의 선택 신학과 연결됩니다.
베드로와 안드레가 즉각 그물을 버린 이유는?
'곧'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우테오스(εὐθέως)'는 지체 없는 즉각적 행동을 뜻합니다. 그물은 어부의 생계 수단이자 직업 정체성이었고, 값비싼 자산이었습니다. 그것을 그 자리에 버려두고 따랐다는 것은 이전의 삶 전체를 내려놓은 결단입니다. 달란트 비유에서 '바로 가서 장사한' 종의 즉각성과 같은 원리로, 충성의 표지는 능력의 크기가 아니라 응답의 속도에 있습니다.
'사람을 낚는 어부'는 물고기를 낚는 것과 어떻게 다른가?
물고기를 낚는 어부는 물고기를 물에서 끌어내어 죽이지만, 사람을 낚는 어부는 죄와 죽음의 바다에서 사람을 건져 생명 안으로 데려옵니다. 에스겔 47:9–10의 생명수 강가의 어부 이미지처럼, 사람을 낚는 것은 심판이 아니라 구원의 행위입니다.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누가 들을 수 있는가'(롬 10:14)라는 로마서의 선언이 이 사명의 긴박함을 보여 줍니다.
누가복음 9장 제자도 세 가지는 무엇인가?
누가복음 9:57–62의 세 장면에서 세 원리가 드러납니다. 첫째, 소유를 극복하라 — 인자는 머리 둘 곳도 없다는 말씀처럼 안락함에 대한 집착을 내려놓는 것입니다. 둘째, 혈연보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우선하라 — 먼저 아버지를 장사하게 해달라는 요청을 주님이 거절하신 이유입니다. 셋째, 뒤를 돌아보지 말고 즉각 응답하라 — 밭을 가는 자가 뒤를 돌아보면 고랑이 굽어지듯, 제자의 삶은 앞만 보는 삶입니다.
'나를 따라오라'는 부르심과 지상대명령은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태복음 4:19의 '나를 따라오라'는 마태복음 28:19의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로 완성됩니다. '나를 따라오라'가 예수님이 제자를 만드는 부르심이라면, '가서 제자로 삼으라'는 그 제자가 또 다른 제자를 낳으라는 명령입니다. 갈릴리 해변의 네 어부에서 시작된 흐름이 온 세상으로 이어지는 선교의 원리이며, '세상 끝날까지 함께 있으리라'는 동행의 약속이 이 사명을 받쳐 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