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재형 목사 · 마태복음 강해 아카이브 · 주제 강해

추수할 일꾼을 보내소서
— 긍휼의 눈과 선교의 기도

마태복음 9:35–38을 중심으로, 목자 없는 양 같은 무리를 보신 주님의 긍휼과 추수의 기도가 어떻게 선교로 이어지는지 탐구합니다.

📖 마태복음 9:35–38 / 마태복음 10:1–5 ✍ 장재형 목사

"예수께서 모든 도시와 마을에 두루 다니사 그들의 회당에서 가르치시며 천국 복음을 전파하시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시니라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

마태복음 9:35–36

"이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 하시니라."

마태복음 9:37–38

I. 무리를 보신 주님의 눈 — 긍휼의 시작

마태복음 9:35–38은 마태복음 4–9장에 걸친 예수님의 갈릴리 사역을 요약하는 결론부이자, 10장의 열두 제자 파송으로 이어지는 전환점이다. 예수님은 모든 도시와 마을을 두루 다니시며 가르치고, 전파하고, 고치셨다. 그리고 그 사역의 한복판에서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다"(마 9:36).

이 한 문장이 이 본문 전체의 출발점이다. 긍휼(헬라어 '스플랑크니조마이, σπλαγχνίζομαι')은 단순한 동정이 아니다. 창자가 끊어지는 듯한 아픔을 의미하는 강렬한 단어다. 예수님은 무리를 멀리서 관찰하신 것이 아니라 그들의 고통을 자신의 몸으로 느끼셨다. 선교와 전도의 모든 동기는 여기서 시작된다. 보시고 불쌍히 여기심. 보지 못하면 긍휼도 없고, 긍휼이 없으면 기도도 없다.

본문의 위치 — 갈릴리 사역의 결산과 전환

마태복음 4–9장은 예수님의 초기 갈릴리 사역을 담는다. 산상수훈(5–7장)으로 하나님 나라의 원리를 가르치시고, 여러 치유 사건(8–9장)으로 그 나라의 능력을 보이셨다. 9:35은 이 모든 사역을 "가르치시며 전파하시며 고치시니라"는 세 동사로 요약한다. 그리고 그 결론에서 예수님은 혼자 이 일을 계속하지 않으신다. 제자들을 향해 기도를 명하시고, 곧이어(10장) 그들을 보내신다. 긍휼에서 기도로, 기도에서 파송으로 이어지는 흐름이 이 본문의 구조다.

II. 목자 없는 양 — 구약이 진단한 영적 상태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이라"(마 9:36). 이 표현은 예수님이 새로 만드신 말이 아니다. 구약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이스라엘의 영적 진단이다.

본문맥락의미
민 27:17 모세가 후계자를 구하는 기도 지도자 없이는 회중이 흩어진다는 두려움
왕상 22:17 미가야 선지자의 환상 패전 직전 이스라엘의 흩어진 모습
겔 34:5–6 거짓 목자에 대한 심판 예언 목자의 부재로 양들이 온 지면에 흩어짐
마 9:36 예수님이 무리를 보신 순간 참 목자 되신 주님이 오심으로 이 진단이 해결됨

"고생하며 유리함"에 해당하는 헬라어는 각각 '에스킬메노이(σκύλλω, 상처 입고 지친)'와 '에리밈메노이(ῥίπτω, 내던져진, 쓰러진)'다. 단순히 길을 잃은 정도가 아니라, 방향을 잃고 상처 입은 채 쓰러진 상태를 묘사한다. 당대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은 있었지만, 참된 목자는 없었다. 바리새인과 서기관들은 무거운 짐을 지우면서도 자신은 움직이지 않는 자들이었다(마 23:4). 예수님은 그 빈자리를 보셨다.

참 목자 되신 예수님

요한복음 10:11 "나는 선한 목자라 선한 목자는 양들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거니와." 예수님은 목자 없는 양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는 데서 그치지 않으셨다. 스스로 그 목자가 되셨다. "인자가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마 20:28). 긍휼의 눈이 십자가의 발걸음으로 이어진다.

III.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 밭과 일꾼의 불균형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마 9:37). 이 선언에는 두 가지 사실이 나란히 놓인다. 밭은 넓고 무르익었으나, 그 밭에 들어갈 사람이 부족하다.

추수할 것
많다
헬라어 폴뤼스(πολύς)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이 이미 많다. 씨 뿌리는 비유의 좋은 땅처럼, 결실을 맺을 밭은 이미 무르익어 기다리고 있다. 문제는 밭에 있지 않다.

일꾼
적다
헬라어 올리고이(ὀλίγοι)

거둘 사람이 부족하다. 문제는 밭의 상태가 아니라 일꾼의 수와 헌신에 있다. 이것이 선교와 전도가 항상 긴급한 이유다.

해법
청하라
헬라어 데에테테(δεήθητε)

스스로 모집하지 말고 추수하는 주인께 간구하라. 일꾼을 보내시는 주체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 기도가 유일한 출발점이다.

이 불균형은 씨 뿌리는 비유(마 13장)의 결론과 정확히 맞닿는다. 좋은 땅에 심겨진 씨는 반드시 30배, 60배, 100배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그 씨를 뿌리는 자, 그 밭을 돌보는 자가 없으면 결실은 일어나지 않는다. "전파하는 자가 없으면 누가 들을 수 있는가"(롬 10:14). 추수의 문제는 밭의 문제가 아니라 일꾼의 문제다.

추수하는 주인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마 9:38). 이 표현이 중요하다. 추수는 인간의 사업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업이다. 일꾼을 소집하고 훈련하고 파송하는 주체는 궁극적으로 하나님이시다. 사람은 청하는 자일 뿐이다. 이것은 선교가 인간의 기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임을 보여 준다. 지성감천(至誠感天)의 원리처럼, 기도(지성)와 하나님의 응답(감천)이 함께 움직인다.

IV. 기도가 응답이 되다 — 9장의 기도와 10장의 파송

마태복음 9:38에서 예수님이 일꾼을 위해 기도하라고 명하신 직후, 바로 다음 장 10:1–5에서 놀라운 전환이 일어난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마태복음 10:1, 5

제자들이 "일꾼을 보내 주소서"라고 기도하자, 제자들 자신이 그 기도의 응답이 되었다. 이것이 이 본문의 가장 놀라운 구조다. 선교 기도는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 기도하는 자가 곧 보냄 받는 자가 될 수 있다. 이사야가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사 6:8)라고 응답했듯, 기도는 응답을 구하면서 동시에 스스로 응답이 될 준비를 하는 행위다.

단계본문내용
마 9:36주님이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심 — 긍휼
마 9:37–38제자들에게 일꾼을 위해 기도하라 명하심 — 간구
마 10:1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권능을 주심 — 준비
마 10:5제자들을 내보내심 — 파송

긍휼이 기도를 낳고, 기도가 준비를 낳고, 준비가 파송으로 이어진다. 이 네 단계는 지상대명령(마 28:18–20)이 완성되기 오래전, 갈릴리 사역 초기부터 이미 작동하고 있던 선교의 원형이다.

V. 씨 뿌리는 비유와 추수 — 심음과 거둠의 신학

마태복음 13장의 씨 뿌리는 비유는 추수 신학의 전반부를 이루고, 마태복음 9장의 추수 기도는 그 후반부를 이룬다. 씨를 뿌리는 것이 전도라면, 추수하는 것은 그 결실을 거두어들이는 것이다.

씨 뿌리는 비유에서 좋은 땅은 돌과 가시떨기가 제거된 밭이었다. 30배, 60배, 100배의 결실을 맺는다. 그러나 아무리 좋은 밭이라도 추수하는 손이 없으면 곡식은 땅에서 썩는다. 씨를 뿌리는 사역과 추수하는 사역은 함께 가야 한다. 요한복음 4:35–38에서 예수님은 사마리아에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신다.

"눈을 들어 밭을 보라 희어져 추수하게 되었도다 거두는 자가 이미 삯도 받고 영생에 이르는 열매를 모으나니 이는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게 하려 함이라."

요한복음 4:35–36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가 함께 즐거워한다. 선교는 개인의 성과가 아니라 함께 일하는 공동체의 사역이다. 집사(디아콘)의 사역도, 선교사의 사역도, 교사의 사역도 모두 이 하나의 추수에 참여하는 서로 다른 손길이다.

VI. 추수 기도를 뒷받침하는 교리적 기초

그리스도론 — 긍휼히 여기시는 대제사장

히브리서 4:15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실 이가 아니요." 예수님의 긍휼은 감정의 동요가 아니라 성육신의 본질이다. 빌립보서 2:6–8의 케노시스(자기 비움) — 하나님과 동등하신 분이 스스로 낮아지신 것은 바로 이 긍휼 때문이었다. 목자 없는 양을 보신 눈이 십자가로 향하는 발걸음을 낳았다. 추수의 주인이신 예수님 자신이 먼저 밭에 들어가 씨가 되어 심기셨다(요 12:24).

구원론 — 추수의 대상은 잃어버린 자

"인자가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라"(눅 19:10). 추수할 밭에 있는 사람들은 목자 없이 흩어진 자들, 심판 아래 있는 자들이다. 로마서 1장이 묘사하는 "내버려 두심"의 상태에 있는 인간이 바로 이 추수의 대상이다. 추수는 심판을 늦추고 구원의 기회를 넓히는 은혜의 사역이다. 일꾼이 늦을수록 추수의 기회는 줄어든다.

성령론 — 일꾼을 세우시고 보내시는 분

사도행전 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이 이르시되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추수하는 주인이 일꾼을 보내시는 방법은 성령을 통해서다. 성령이 부르시고, 성령이 구별하시고, 성령이 보내신다. "일꾼을 보내 주소서"라는 기도는 궁극적으로 성령의 역사를 구하는 기도다. 성령이 임하시는 곳에 추수의 일꾼이 일어난다.

VII. 오늘의 추수밭 — 전방 선교와 집사 사역

사도행전 6장의 집사 선출은 이 추수 신학의 실천적 사례다. 구제에서 소외된 과부들의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일곱 집사가 세워졌다. 사도들은 말씀 사역에 전념하고, 집사들은 실제적 필요를 섬겼다. 이것이 추수밭의 분업이다.

집사는 전방 선교(Frontier Mission)를 섬기는 후방 사역자다. 화려하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하다. 스데반은 집사였지만 말씀에서 깊어져 순교자가 되었다. 말씀에서 깊어진 자가 쓰임 받는다는 원리는 추수밭의 어느 자리에서든 동일하게 적용된다. 누구든 자신이 서 있는 자리에서 추수하는 일꾼이 될 수 있다.

케리그마 코이노니아 디아코니아 — 추수의 구조

케리그마(선포) → 코이노니아(교제) → 디아코니아(섬김)의 교회 구조는 추수 사역의 실제 흐름이다. 말씀이 선포되어(케리그마) 씨가 뿌려지고, 받아들인 사람들이 공동체 안에서 교제하며(코이노니아) 자라고, 그 성장이 섬김으로(디아코니아) 열매 맺는다. 이 순환이 멈추지 않을 때 추수는 계속된다.

VIII. 추수할 일꾼을 보내소서 — 다섯 가지 실천 원리

  1. 먼저 보라, 그리고 불쌍히 여기라. 예수님의 첫 행동은 "보시고"였다. 바쁜 일상 속에서 목자 없는 양처럼 지쳐 있는 사람을 보는 눈이 선교의 시작이다. 보지 못하면 긍휼도 없고, 긍휼이 없으면 기도도 없다.
  2. 추수하는 주인께 먼저 청하라. 스스로 일꾼을 모집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 기도하라. "구하라(Ask) 그리하면 주실 것이요"(마 7:7)의 원리가 여기서도 작동한다. 선교는 인간의 전략 이전에 하나님께 드리는 간구에서 시작한다.
  3. 기도하는 자가 응답이 될 준비를 하라. 제자들이 기도하자 그들 자신이 파송되었다. "일꾼을 보내 주소서"라고 기도하는 것은 "내가 그 일꾼이 되겠나이다"라는 헌신을 포함할 수 있어야 한다. 이사야처럼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할 준비가 필요하다.
  4. 뿌리는 자와 거두는 자로 함께 일하라. 선교는 혼자 하는 일이 아니다. 씨를 뿌리는 자와 추수하는 자가 함께 즐거워하는 구조를 기억하라(요 4:36). 각자의 자리에서 맡은 역할에 충성하는 것이 추수를 완성한다.
  5. 말씀에서 깊어져 쓰임 받으라. 스데반이 집사로서 말씀에서 깊어졌듯, 추수밭의 어느 자리에서든 말씀에서 깊어진 자가 쓰임 받는다. 직분이나 지위가 아니라 말씀의 깊이가 추수의 열매를 결정한다.

IX. 결론 — 오늘도 밭은 무르익어 있다

2천 년 전 갈릴리 마을마다 목자 없는 양처럼 지친 무리가 있었다. 오늘도 다르지 않다. 방향을 잃고, 지치고, 흩어진 사람들이 우리 주변에 있다. 추수할 것은 여전히 많다. 문제는 밭이 아니라 일꾼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먼저 기도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그 기도의 응답으로 제자들 자신을 보내셨다. 오늘 우리의 기도도 같은 흐름을 따른다. "추수할 일꾼을 보내 주소서"라는 기도는 동시에 "나를 보내소서"라는 헌신의 문을 여는 기도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주께서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하시니 그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였더니."

이사야 6:8

밭은 무르익어 있다. 주인은 기다리신다. 오늘, 기도하라. 그리고 응답하라.

주요 참고 성구
마 9:35–38 / 마 10:1–5 / 마 13:1–23 / 마 20:28 / 마 23:4 / 마 28:18–20
요 4:35–38 / 요 10:11 / 요 12:24
눅 19:10 / 롬 10:14–15 / 롬 1:18–24
민 27:17 / 왕상 22:17 / 겔 34:5–6 / 사 6:8
행 6:1–10 / 행 13:1–3 / 히 4:15 / 빌 2:6–8

자주 묻는 질문 (FAQ)

'추수할 일꾼을 보내소서'는 어떤 상황에서 하신 말씀인가?
마태복음 9:35–38은 예수님이 모든 도시와 마을을 다니시며 가르치고 전파하고 치유하신 사역을 요약한 직후에 나옵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유리함'을 보시고 불쌍히 여기셨습니다(마 9:36). 그리고 제자들에게 '추수할 것은 많되 일꾼이 적으니 그러므로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여 추수할 일꾼들을 보내 주소서 하라'고 명하셨습니다(마 9:37–38).
'목자 없는 양'이라는 표현의 구약적 배경은?
민수기 27:17에서 모세는 후계자를 구하며 '여호와의 회중을 목자 없는 양 같이 되지 않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열왕기상 22:17에서 미가야 선지자도 이스라엘을 '목자 없는 양 같이' 흩어진 모습으로 묘사합니다. 이 표현은 지도자의 부재, 방향의 상실, 보호받지 못하는 취약함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이 구약의 언어로 당대 이스라엘의 영적 상태를 진단하셨습니다.
왜 추수할 것은 많은데 일꾼이 적다고 하셨는가?
추수할 것이 많다는 것은 복음을 받아들일 준비가 된 사람들이 많다는 뜻입니다. 씨 뿌리는 비유의 좋은 땅처럼, 결실을 맺을 밭은 이미 무르익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밭에 들어가 거둘 일꾼이 부족합니다. 문제는 밭에 있지 않고 일꾼의 수와 헌신에 있습니다. 이것이 선교 기도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추수하는 주인에게 청하라'는 기도는 무엇을 가르치는가?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스스로 일꾼을 모집하라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대신 '추수하는 주인'께 청하라고 하셨습니다. 일꾼을 보내시는 주체는 하나님이십니다. 이것은 선교가 인간의 기획이 아니라 하나님의 주권적 사역임을 보여 줍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구하는 것이며, 그 기도에 응답하여 다음 장(마 10장)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직접 보내십니다.
마태복음 9장의 추수 기도는 10장의 파송과 어떻게 연결되는가?
마태복음 9:38에서 '일꾼을 보내 주소서' 기도하신 직후, 10:1–5에서 예수님은 열두 제자를 부르시고 권능을 주어 보내십니다. 기도가 응답의 통로가 되는 구조입니다. 제자들이 기도하자 제자들 자신이 그 기도의 응답이 된 것입니다. 이것은 선교 기도가 결코 수동적이지 않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기도하는 자가 곧 보냄 받는 자가 될 수 있습니다.